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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과 인간의 미래

생명공학, 철학, 논술 등 방통대 생명공학과 인간의 미래 요점 정리 5. 자본주의 위기와 자본주의 대안, 그리고 생명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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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자본주의 위기와 자본주의 대안, 그리고 생명공학

2000년대 중엽 영국의 식수에서 프로작(prozac)이 검출되었다. 프로작은 의약품으로 사용되는 화학약품으로 1970년대에 미국에서 제조되어 1988년부터 의약품으로 판매되었다. 이 약품은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이 기분이 울적할 때 이 약을 복용한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애용되고 있다.

이 화학물질이 식수에서 검출된 이유는 배설물을 통해 하수로 들어간 후 하수처리장에서 걸러지지 못하고 처리된 물과 함께 강으로 흘러갔다가 정수장을 거쳐 식수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의약품은 하수처리장에서 제대로 제거되지 않기 때문에, 이것들은 일반 쓰레기가 아니라 특수 폐기물로 처분 된다. 그러나 인간이 복용하는 의약품이 과잉복용되어 배설물로 나오면 하수관을 통해 하수종말 처리장으로 갈 수밖에 없고, 여기에서 거의 그대로 빠져 나와 강물에 섞이게 된다. 지하수가 아니라 강물을 정수해서 식수를 만들 경우 의약품은 식수에도 들어갈 수밖에 없다. 물론 의약품이 미량 이라면 크게 희석되기 때문에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프로작의 경우 배설물을 통해 많은양이 하수처리장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식수에서까지 검출된 것이다. 이 사실은 영국인이 프로작을 얼마나 많이 복용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물질적인 풍요속에서도 그들이 얼마나 즐겁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지 증거한다.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2005년부터 2008년 사이에 프로작 복용이 400% 증가했다. 2008년 말에는 리먼 브러더즈가 파산하고 그 여파 로 세계 금융위기와 경제위기가 닥치는데, 이때 또 프로작의 소비가 아마 아주 빠르게 늘어났을 것이다. 당시에 시작된 경제위기는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을 불러일으 켰다. 생명공학의 발달도 자본주의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료산업이 대단히 큰 이윤을 창출하는 신성장 산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난치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크게 연장해 줄 것으로 선전되는 줄기 세포 연구도 새로운 바이오산업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많은 이윤을 가져올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융성하고있다. 독일에서는 2007년부터 XCell이라는 의료기업에서 고액의 치료비를 받고 아직 전혀 검증되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줄기세포는 척수에서 추출된 것이고, 뇌성마비 아이들도 그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줄기세포를 주입받은 아이가 사망함 으로써 치료는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이탈리아에서 부모에게 끌려 먼 길을 온 그 아이의 치료비는 거의 3억원에 달했는데, 이렇게 줄기세포 치료기술이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기술이지만 치료에 이용 된 이유는 바로 자본주의가 이윤추구를 다른 무엇보다 우선으로 하기 때문 이다. 그동안 이 의료 기업은 줄기 세포 치료를 통해 많은 이윤을 창출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가 이대로 계속 팽창해간 다면 지금과 같은 생명공학 기술의 개발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그것의 병폐를 극복 하는 다른 시스템에 의해 대체되었을 경우 현재의 생명공학이 지속 될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자본 주의가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해서만 지속적으로 발달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경제가 계속해서 축소되면 자본주의는 존립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매우 큰 사회적 혼란 이 일어날 것이고, 결국 다른 경제시스템이 등장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는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고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온갖 수단을 찾아내서 동원하고 사용한다. 이들 수단은 기술, 자연자원, 인간 노동력 인데, 이것들이 무한정 존재한다면 자본주의는 계속 성장할 수 있다. 기술이 무한히 발달하고 자원 이 무한정 사용가능하다면 거기에 노동력을 투입해서 경제팽창을 무한히 지속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무한한 것이 아니다. 특히 지구의 자연자원은 한정 되어 있다. 그러나 이윤추구를 하는 자본은 자연자원을 무한정한 것으로 보고 에너지를 비롯한 많은 자원을 사용해서 상품을 생산 하고 이윤을 창출했다. 그 결과 대규모의 지구환경 파괴가 일어 났고, 특히 기후변화 같은 전지구 적인 환경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또한 자원부족 현상도 심화되었다. 에너지의 사용은 석유 고갈과 에너지 가격의 대폭적인 상승을 가져왔다. 2000년대초에 배럴당 20 달러였던 석유는 2008 년에 150 달러까지 올라갔고, 2011년부터는 100달러 이상의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가스나 석유 가격도 크게 올랐다. 그뿐 아니라 첨단 컴퓨터나 2차전지, 나노기술등의 첨단기술에 필요한 희토류 금속, 리튬 등의 금속들도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자본주의는 거듭해서 팽창을 추구하여 냉전후에는 세계화를 통해 전 세계의 시장을 하나로 통합 했고, 신자유주의 이념에 입각해서 상품과 돈의 이동이 전 세계에서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전세계의 경제규모는 크게 확대되었고 이윤창출도 늘어났지만, 자연자원의 소비는 더욱 크게 증가했다. 그 결과 자연파괴, 자원고갈, 전지구적 환경문제도 더욱 심각해졌다. 또한 세계 시장 이 하나로 통합 되면서, 다시말해서 상품과 돈의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따라서 상품의 생산과정 에서 전세계적인 분업이 일어나 생산과 소비의 지역적 제한이 해소됨에 따라 전지구적인 상호의존 이 심화되었다. 미국의 애플에서 아이폰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본, 한국, 독일, 중국, 미국 등지의 부품 회사에서 부품이 생산되어야 하고 이것이 모여 미국에서 조립된다. 아이폰 하나의 상품 생산에 전 세계의 멀리 떨어진 많은 나라들의 생산자들이 필요한 것이고, 이들운 서로 상호 의존할 수밖에 없다. 노르웨이산 훈제연어도 노르웨이산 사료를 먹으면서 칠레에서 사육된 연어를 다시 노르웨이로 가져다가 가공 함으로써 생산된다. 이러한 지구적인 상호의존의 심화란 한 지역의 번영이 다른 지역 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 지역의 침체가 전지구적인 침체로 이어질 수도 있음 을 의미한다. 2008년 말에 미국 리먼 브러더즈의 파산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와 뒤이은 경제 위기는 이러한 세계 단일시장의 형성과 전지구적인 상호의존성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위기가 커다란 경제적, 사회적 혼란을 가져오자 미국과 여러 선진국에서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처방을 내놓고 이를 시행했다. 그 결과 개별 국가별로 볼 때는 위기를 극복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독일 등이 그렇다. 독일은 2008년말에 미국발 금융위기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지만, 자동차를 폐차 할 경우 지원금을 주는 등의 정부 차원에서 수행한 경기부양 노력에 힘입어 2009년 중엽부터 경제 가 되살아나 수치상으로는 수년 만에 경제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미국도 거대은행과 제너럴 모터스 같은 자동차회사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에 힘입어 혼란이 약간 진정되기는 했지만, 침체는 2012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11년부터는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 들의 위기가 전지구에 다시 큰 타격을 입혔다. 이 경제위기가 언제 극복될 수 있을지 그렇지 않으면 독일까지도 위기의 늪으로 빠져들어가고 그 여파로 전세계가 깊은 침체에 빠질지는 어떤 경제학 연구자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로 인해 자본주의 경제 자체를 위기라고 보는, 자본주의 에 대해 비판적인 연구가 점점 부상하고 있다. 20세기 초부터 자본주의는 여러차례 위기를 겪었다. 그때마다 위기는 여러가지 처방에 의해 극복 되어왔다. 1930년대에 미국 에서 대공황이 일어나 유가 증권 가격이 폭락하고 소비가 크게 줄고 실업자가 넘쳐났을 때에는 국가에서 일자리를 창출 하고 소비를 진작하기 위해 뉴딜 정책을 수립하여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였고, 이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대부분의 크고작은 위기는 이와 같이 인위적인 경기부양 방식을 통해 극복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통해서 경기침체로부터 벗어나면 경제는 다시 확장하기 시작하여 더 많은 에너지와 더 많은 자연자원을 소비하게 되며, 시장의 확대는 더 심하게 상호의존성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위기는 다시 도래하고, 사람 들은 다시 경기 부양책과 같은 임기응변적 처방을 통해서 위기극복을 시도한다. 그러나 결과는 더 큰 위기의 도래로 나아간다. 왜냐하면 경제규모가 더 커지고 상호의존성이 더 커질수록 위기의 규모도 전지구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20세기 말부터는 전지구적인 환경위기가 심해지자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지속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던져진다. 이로부터 나온 답이 지속가능한 발전, 지속가능한 성장, 녹색성장 같은 담론이다. 지속가능한 발전, 지속가능한 성장은 자본주의가 낳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성장을 의문시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담론 은 어떻게 성장을 지속하면서도 자원고갈과 환경파괴는 지속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담론에서 제시하는 답은 자원소비를 적게 하면 서도 성장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연파괴는 줄여가면서 인간의 물질적 번영과 행복을 증진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기술혁신이다. 자원이용 효율이나 에너지이용 효율이 아주 높은 기술을 개발하여 생산을 함으로써, 다시말하면 아주 적은 양의 자원으로 큰 효과를 올린다는 것이다. 즉 물질적 번영은 더 늘리되 자원은 그 전보다 더 적게 씀으로써 성장을 지속하면서 지구환경을 구한다는 것이다.

기술혁신에는 효율적인 기술뿐만 아니라 순환적인 기술의 개발도 들어간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지금 까지 상품 생산과 소비는 쓰고 버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순환적인 생산기술이란 자연에서와 같이 순환이 가능한 원료, 즉 썩는 것을 사용해서 생산하는 기술이나, 그렇지 않으면 어떤 한 상품 의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다른 상품 생산과정에 투입할 수 있도록 기술을 디자인한 것 이다. 예를들어 썩는 플라스틱을 원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석탄재를 시멘트 원료로 사용하고, 시멘트로 만든 콘크리트는 나중에 다시 부수어서 재활용하는 것 등이 있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서 물질적인 재화의 생산을 줄임으로써 자원이용을 축소하는 것도 여기에 들어 간다. 소위 탈물질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은 약속한대로 탈물질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오히려 정보의 소통량을 크게 늘림으로써 이를 뒷받침해주는 컴퓨터생산 같은 하드웨어의 생산을 크게 확대했고 종이사용조차 크게늘렸다. 지난 수십년 동안 상당한 효율 향상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를 통한 자원 소비의 감소는 오지 않았다. 이는 기술적, 심리적 리바운드 효과 (부메랑 표과) 를 통해 효율향상이 상쇄되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기술혁신을 통해 가벼운 자동차가 개발되면 연료사용이 줄어든다. 그러나 플라스틱 사용량이 늘어남으로써 금속의 사용량은 줄지만 다른 자원의 사용이 늘어는다. 또한 그 자동차만을 놓고 보면 연료사용이 줄어들지만, 사람들이 가볍고 연료소비가 적은 자동차는 여분의 자동차로 구입하기때문에 실질적으로 자원소비와 연료소비는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백열등을 절전형전등으로 바꾸면 개별 전등의 전기소비가 크게 줄어들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조명을 더 환하게 하고, 적극적인 절약을 회피함으로써 전기소비가 결국은 증가하게 만든다. 순환적 기술의 도입에서도 성장은 문제삼지 않는다. 자연에서와 같이 순환이 가능하면 지속적으로 성장해도 파괴적 결과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환이 어떤 기술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자동차나 컴퓨터의 경우 순환은 거의 불가능하다. 일부 재료나 부품의 재활용은 가능하겠지만, 이 정도의 재활용으로는 자원소비의 증가를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결국은 이러한 순환적인 기술의 적용도 지속적인 성장을 의문시하지 않는 상태에서 적용되면, 경제규모의 확대와 자원의 고갈, 전지구적 환경파괴를 막지 못한다. 자본주의의 또 다른 대안으로 여겨지는 것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이다. 자본주의는 상품의 생산과 소비의 계획을 하지 않는다. 시장에 맡기는 것이다.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이 가장 합리적으로 공급과 수요를 조절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에서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를 가져오고 또

한 불합리한 분배를 낳는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사회주의에서는 계획을 통해서 합리적으로 자원을 소비하여 생산하고 합리적인 분배를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를 극복하려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에서도 성장은 의문시되지 않는다. 사회주의에서도 인류의 번영을 추구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경제규모가 계속 확대되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이 점에서는 자본주의와 다를 바가 없고, 따라서 사회주의의 순수한 이념이 실현된 사회주의 사회 하에서도 현재와 같은 생명공학의 전개방향이 바뀌리라는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두가지 대안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이렇게 대안적인 시스템 속에서는 생명공

학이 계속 발달할 것인가? 생명공학은 자본주의 경제의 확대와 더불어 크게 발달했다. 새로운 기술로서 이윤창출을 위한 혁신적 기술로서 발달한 것이다. 바이오산업이 정보통신산업과 더불어 새로운 성장기술로 꼽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성장을 의문시하지 않는 시스템 하에서는 생명공학도 의문시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주의하에서도 마찬가지로 성장을 추구하기 때문에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되는 마지막 대안은 성장을 멈추고, 경제규모를 축소해가는 것이다. 방법은 상품의 생산과 소비는 가능한 한 좁은 지역에서 이루어지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단일세계 시장에 기반한 신자유주의의 폐해

도 극복한다.

지구적인 분업이 불가피한 상품의 경우에는 필요한 사람들이 각각 그 상품으로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물건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오랫동안 사용함으로써 이의 생산에 필요한 자원소비를 줄인다. 예를들어 자동차의 경우 각 가정에서 하나 또는 두대의 자동차를 보유하지 않고 수십개의 가정에서 5-10대의 자동차를 공동으로 사용하면 이들 가정 모두 불편 없이 자동차를 쓸 수 있다. 지금 카 셰어링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에서 꽤 널리 시행되어 있는 것인데, 이러한 식의 상품 사용이 보편화되면 생산 자체가 줄어들고 자원소비도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산이 줄어 들고 일자리가 줄어들어 실업자가 양산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노동시간을 주당 약 20-30 시간 으로 줄임으로써 해결된다. 이를 통해서 생산 자체를 줄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성장은 지금까지 성장에 길들여온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바꾸어야만 실현될 수 있다. 2008년 말 전지구적인 경기침체로 석유와 가스 소비가 크게 줄어든 것 같이 경제가 어려워진 결과 자원소비가 줄어들거

, 국가의 억압적인 통제를 통해서 자원의 소비가 감소할 경우에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생활 양식을 바꾸었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오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자원소비가 잠시나마 줄어들고 이에 따라 지구환경이 되살아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억압이 사라지고 경제가 회복되면 사람들의 복구심리가 작용하여 그 전보다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현재의 전지구적인 환경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에코파시즘 같은 독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러한 독재 시스템 자체가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지속가능성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사회 시스템 자체, 인간의 생활양식 자체의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생명공학도 현재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윤창출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변화된 문화 속에서 행복한 삶과 연결될 수 있는 생명공학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줄기세포 연구를 통한 수명연장 같은 것은 아예 없을 수도 있다.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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