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생명공학의 발달과 인간
20세기 초의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이 유럽인의 근대적 정신세계에 상당한 충격을 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까지 뒤흔들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세계를 해석하는 도구의 하나로서 정신세계에 변화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물리학 이론으로 남아 있었고, 추상적인 사변과 계산으로부터 벗어나 일상생활로 파고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물리학 연구가 이차대전 때 원자폭탄을 낳고 그것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잿더미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해도, 그 파괴적 능력을 직접 체험한 일본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원자탄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영역의 것이었다. 그것은 관념 속에서 거대한 공포를 일으키기는 했지만, 일상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적으로 국가의 통제를 받았고, 가공할 파괴력 때문에 이차대전 후에는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기 때문에 일상이 아니라 가상의 영역에서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적어도 그 전반기 동안은 유전공학, 생식공학, 분자생물공학, 합성생물학, 나노생명공학, 복제기술 등 ‘새로운’ 생명공학의 영향에 의해 깊게 각인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생명에 대한 연구는 21세기 후반기에도 융성하겠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속의 생명체가 아니라 인공적인 생명제작 연구나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 ‘로봇’ 연구가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생명공학이 인간사회에 가져올 충격의 정도는 20세기 초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이 정신세계에 일으켰던 변화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엄청날 것이다. 생명공학은 이론물리학과 달리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생명 조작, 생명의 해체를 통해 생명의 본질에 관한 우리의 관념을 뒤흔들 것이고, 일상의 세계까지 크게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생물을 ‘해체’하는 일은 생명체들 사이의 유전자를 뒤섞는 일(유전자 이식)에서 시작된다. 이로부터 새로운 성질을 지닌 생명체가 등장하는데, 이러한 방식이 전통적인 신품종 개발 방식과 다른 점은 유전자를 직접 이식함으로써 새로운 성질을 보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신품종의 개발은 오래 전부터 수행되어 왔다. 그러나 새로운 생명공학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특별한 형질을 지닌 품종은 어떤 종을 특정한 한쪽의 방향을 향해서 오랫동안 교배함으로써 얻었다. 서로 다른 종을 교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신품종 개발 과정에서는 다른 종끼리 유전자가 섞이는 일생명공학과 인간의미래은 일어나지 않는다. 소와 닭, 양과 토끼, 콩과 보리가 서로 섞여서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와 달리 유전자 이식은 유전공학적인 기술장치를 통해서 어느 한 종의 유전자를 기계적으로 뜯어내어 다른 종의 유전자와 섞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종 사이에서도 가능하다. 이 기술이 적용되면 미세한 박테리아부터 거대한 코끼리까지 모든 생물들 사이에서 유전자가 섞여들어갈 수 있고, 이로 인해 이들 종사이의 분명한 구분이 허물어지고 구분이 모호해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농작물의 경우 이러한 유전자 이식 기술을 통해서 이미 수많은 품종들이 생겨났는데, 이들 품종에 이식된 유전자는 바이러스에서부터 동물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으로부터 얻어진 것이다. 바이러스로부터 유전자를 이식받은 토마토는 병에 강한 품종으로 변신하고, 박테리아의 유전자는 토마토에게 제초제의 독을 이겨내는 성질을 부여한다. 넙치의 얼음방지 유전자는 토마토를 냉해에 강한 것으로 거듭나게 한다. 그밖에도 파리의 유전자를 이식받은 옥수수, 누에의 유전자를 지닌 감자, 중국 햄스터의 유전자가 이식된 담배, 반딧불의 유전자를 지닌 형광 담배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식물들이 박테리아나 동물, 그리고 다른 식물들과 섞이고 있다. 동물 종의 경우에도 이식되는 유전자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식물에서는 유전자 이식이 대부분 작물 생산성의 향상을 꾀하기 위해서 수행되지만, 동물의 경우에는 유전자 이식을 통한 변형이 가축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 외에 질병 연구용이나 인간에게 필요한 단백질 생산용 동물을 만들기 위해서도 이루어진다. 오히려 성장 이 빠르거나 몸집이 큰 가축을 만들기 위해서 유전자를 이식하는 것보다는, 인간의 질병을 연구하는 데 사용할 동물이나 단백질 생산용 동물을 만들기 위해서 유전자를 이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질병 연구용으로 유전자가 이식되거나 제거된 동물로는 이미 생쥐 외에도 도롱뇽, 토끼, 양, 염소, 소, 돼지, 조류, 물고기 등 다양한 것들이 나왔다. 단백질이나 헤모글로빈 등의 의약품용 물질 생산을 위해서는 양, 염소, 돼지, 토끼 같은 것들이 유전자 조작 품종으로 변형되었다. 전세계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복제양 돌리 의약품 생산용 유전자 변형 동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공학과 인간의미래 이런 동물에서 이식 유전자로는 인간의 유전자가 사용된다. 동물과 인간의 유전자 서로 섞여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를 이식받은 동물은 인간 몸에서 생성되는 호르몬을 만들어 내거나, 인간에게 적합한 장기를 만들어내는 기계적인 일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인간과 동물이 아주 적기는 하지만 혼합이 일어나고 있음은 분명하다. 유전자를 이식받지 않더라도 동물과 인간이 서로 섞이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 이는 아직 실용화되지 않았지만 이미 실험실 수준에서 일어나고 있다. 동물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일, 인간 세포의 핵을 핵이 제거된 동물의 난자에 이식하는 일 같은것이 그것이다. 유전자 조작기술과 생식공학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을까? 예를들어 부족한 장기를 공급하기 위해 동물에게 인간의 유전자를 이식하고 이 동물로부터 이식용 장기를 얻는 연구는 한창 진행중이다. 특히 그 주된 대상동물인 미니돼지의 유전자조작과 번식은 거의 실용에 적용할 수준까지 도달했다. 2004년에 황우석 박사가 언론에 발표하고 주목을 받은 연구 중 하나도 바로 장기 제공용 미니돼지 연구였다.
인간의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이 돼지의 장기가 인체에 이식되면 심한 거부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 보통은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면 초급성거부반응이 일어나서 장기를 이식받은 인간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사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식용 장기가 부족해도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지 못하는 것인데, 인간의 유전자를 동물에게 이식하여 거부반응을 줄이면 장기 이식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인간에게 이식할 수 있는 심장을 대량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인간에게 적합한, 인간심장을 이식했을 때와 같은 정도의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심장을 갖도록 유전자 조작된 돼지를 개발하는 것이다.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한다고 해서 인간의 외형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심장이나 간 같은 내장 기관이 바뀌는 것일 뿐 감각기관이나 피부가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돼지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특징적인 것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간혹 다른 사람으로부터 심장을 제공받은 사람이 그 심장의 원 소유자로부터 정신적인 영향을 받는 일이 있다는 보고가 있는데, 돼지의 심장을 지닌 사람이 정신적.심리적으로 어떠한 변화도 겪지 않는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미국에서 이식용 심장을 제공하는 사람은 상당수가 흑인 청년이다. 이들의 심장을 이식받는 사람은 중년의 백인 여성이나 남성이다. 이들은 심장이식 후 생활 습관이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나이나 지위에 맞지 않는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심장이식을 받은 중년 남성은 사람들이 모이는 데 갈 때에도 야구 모자를 쓰고 야구 방망이를 들고 가기도 했는데, 이유를 분석한 결과 이식용 심장을 제공한 흑인 청년이 살아 있을 때 그런 차림으로 다녔다고 한다. 심장이식 후 갑자기 식성이 바뀌어 피자를 너무 좋아하게 된 사람도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인간의 기억은 두뇌에만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에도 들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석하는 심리학자들도 있다. 돼지의 심장을 이식받았을 경우에도 유사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
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정체성이란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이 심장뿐만 아니라 심장, 허파 등 상당수의 장기를 돼지 같은 동물로부터 얻었을 경우 그 사람의 정신은 인간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그는 외형상으로는 인간이지만 신체 내부에서는 동물의 장기가 활동하고 있고, 이로 인해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것보다 더 나아가서 유전공학과 생식공학을 이용해서 인간을 조작하고 인간 유전자를 변형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인간의 정신과
사회에 상당한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조작은 체외수정으로 시험관 아기가 탄생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전통적인 가족관계나 인간관계에 대한 관념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도덕적.윤리적 판단기준도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체외수정이 도입되기 전 부부 사이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육체적 관계를 통해서만 아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체외수정 도입 후에는 불임 부부의 경우 여성이 다른 남성의 정자를 이용해서 임신을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윤리적인 문제 제기가 일어나지 않지만, 엄격한 사회에서는 이는 커다란 반발에 부딪칠 것이다.
대리모나 정자판매 같은 경우도 윤리적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최근에는 여기에 체세포 복제 기술이나 배아 줄기세포 배양기술, 수정란 자체의 착상전 유전자 조작기술이 가세하면서 윤리적인 혼란의 정도가 강화되고 있다. 인간의 조작에 이용되는 기술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인간 배아의 조작과 유전자 치료, 앞으로 시행될 것으로 보이는 인간 복제와 착상전 배아의 유전적 조작 등이 있다. 유전자 치료는 유전병이 어떤 특정한 유전자의 결함에 의한 것임이 판명되었을 때 인체에 정상 유전자를 주입해서 결함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대치하거나, 대치까지는 못하더라도 정상 기능을 발휘하는 유전자를 주입함으로써 신체 기능을 정상으로 만들려는 시술법이다.
유전자 치료는 인간의 발생이 끝난 다음에 또는 탄생 후에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이다. 이때는 모든 세포에 결함 유전자가 들어있기 때문에 이들 세포를 모두 정상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되돌려 놓기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들 유전병을 가진 사람이 자식을 낳을 경우 자식에게 유전병이 계승되는 것을 배제할 수도 없다. 말하자면 발생이 끝난 상태에서의 유전자 치료는 여전히 불완전한 치료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좀더 나은 그리고 좀더 완벽한 ‘치유’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왔던 현대의학이 이렇게 불완전한 유전자 치료에 만족할 리는 없다. 치료 방법에 흠이 있다면 이런 흠을 없애는 방법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어디서 이 방법을 찾을 수 있겠는가? 발생이 종결된 다음의 치료가 불완전한 것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면 발생 이전의 단계에서 치료를 시도하면 될 것이다. 다시말해서 발생이 시작되기 전의 수정란이나 초기 배아상태에서 유전자 조작을 수행하면, 예를들어 이 시기에 그 속의 결함 유전자를 정상의 것으로 대치하면, 세포가 분열함에 따라 모든 세포 속에 정상의 유전자가 들어가게 된다. 그 결과 유전병은 완벽하게 치료되는 것이다. 초기 배아 단계에서 유전병 치료를 위해 유전자를 조작하는 일이 이루어지려면 아직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와 유사한 일은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다. 아기를 밴 여자들이 유전적인 기형아를 낳지 않기 위해 또는 자기가 원하는 성을 가진 아이를 낳기 위해서 받는, ‘양수검사’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일종의 산전 유전자검사로
이미 일상적인 것이 되었는데, 이 검사에는 그 과정에서 초래될 수 있는 태아손상 위험과 유전적 결함을 지닌 태아의 낙태라는 께름칙한 문제가 항상 따라다닌다. 현대의 학에서는 이 문제 또한 해소되어야 할 것이 분명한데, 생명공학에서는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착상 전의 초기배아 상태에서 유전자 검사를 함으로써, 즉 착상전 유전자 진단에서 찾아냈다. 착상전 유전자진단에서는 체외수정으로 생성된 초기배아로부터 세포를 떼어내어 핵 속의 염색체에 담겨있는 유전자의 결함 여부를 검사한다. 그 결과 배아가 유전적인 결함을 지닌 것으로 나오면 배아는 폐기되지만, 결함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 배아가 자궁에 주입되어 태아로 자라나게 된다.
착상전 진단법이 보편화되면 유전병은 아기의 탄생 이전에 차단되기 때문에, 살아가는 동안 방사선 피폭 등으로 인한 유전자 변이로 병에 걸리는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유전자 치료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렇게 착상전 유전자 진단을 통해 배아가 유전적인 결함이 있을 때는 폐기하고 결함이 없을 때만 발생하도록 하는 것도 생명공학 기술이 인간 생명의 형성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 또한 현대 생명공학으로서는 만족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여전히 결함의 유무에 따른 소극적인 선택만이 이루어지고 있지 치료라고 볼 수 있는 적극적인 시술은
없기 때문이다. 유전공학자들이 유전자를 특정 유전병과 연결시키는 정도에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그만 멈추어 선다면, 이 상태에서는 배아선별을 통한 유전병 제거가 최상의 치료일 것이다. 그러나 생명공학자들은 결코 이쯤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이들은 인간의 ‘내부’를 완벽하게 알아낼 목적으로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30억개에 달하는 염기서열을 해독했고, 인간 유전자의 수가 모두 수만개 쯤 된다는 것도 알아 냈으며, 이제 이들 유전자의 특성을 모두 밝혀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 않은가? 생명공학자들은 이미 비만, 알코올 중독, 특정한 암, 알츠하이머병, 수명, 수면 등 각종 질병이나 생명현상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그러면 이들이 유전자의 성질을 밝혀낸 다음에 무슨 일을 하려 들까? 역사적으로 볼 때 지식과 기술이 존재할 때 인간은 항상 그것을 적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유혹은 오직 적용 대상이 분명하지 않고, 비용이 너무 많이 들 경우에만 억제되었다. 분명한 대상이 존재하고 비용 부담이 너무 크지 않은 경우면 항상 실제 생명공학과 인간의미래에의 적용이 이루어졌다. “할 수 있는 것은 항상 시도”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임신한 여자가 착상전 유전자검사를 받으려 하고, 그 결과 특정한 유전병의 유전자를 지닌 배아뿐만 아니라 알코올중독이나 비만 유전자를 지닌 배아를 임신하지 않으려는 경우는 일어나지 않을까?
이미 산전 유전자검사의 경우에도 비만이나 알코올중독 같은 유전적 성향을 지닌 배아를 낙태 하겠다고 하는 임부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럴 경우 배아 선별은 특정 유전병의 배제나 성 선택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각종 유전적 특징을 배제하는 데에도 이용될 것이다.
이 경우 유전적인 선별은 소극적인 최소한의 배제가 아니라 적극적인 유전적 선택으로 넘어간 것이
라 할 수 있다. 물론 성을 선별하는 것을 적극적인 선택의 예로 볼 수 있지만, 특정 유전병이나 성의 차이라는 것은 아기가 태어났을 때부터 누구에게나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고, 그에게 평생동안 수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전병의 배제나 성의 선택은 적극적인 의지가 개입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수동적으로 떠밀려서 이루어진 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비만이나 알코올 중독은 아기의 탄생시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아기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야 드러날 수 있는 것이고, 자라난 환경에 따라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러한 특징을 배제하는 것은 유전자를 조작하지만 않았을 뿐이지 초보적이긴 하지만
적극적인 아기 ‘디자인’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제 착상전 유전자진단 다음 단계로 생명공학에서 하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졌을 것이다. 초기배아를 유전적으로 조작하여 ‘디자인’하는 것이다. 생명공학자들이 이미 소, 양, 돼지, 생쥐 같은 동물을 가지고 많은 실험을 거쳤고 다양한 성공사례도 얻어냈기 때문에, 인간 대상의 배아 유전자 조작을 기술적으로 아주 어려운 것으로 볼 단계는 이미 지나갔다. 기술이 존재하기 때문에, 언젠가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법적.윤리적 장애물이 제거되면 배아 ‘디자인’이 현실이 된다고 보아야 하는 것
이다. 초기에는 아주 간단한, 특정한 성질만을 지배하는 유전자에 대해서만 그것을 제거하거나 좀더 나은 것으로 바꾸는 시술이 행해질 것이다. 그리고 체외수정의 경우에도 그랬듯이 기술이 좀더 완숙해지면 배아 속에 담긴 인간의 각종 능력과 관계되는 유전자들이 더 나은 것으로 대치되거나 새로운 능력을 주는 유전자들이 주입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물론 여러 생물학자들이 경고하듯이 인간의 성질이 전적으로 유전자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환경의 지배를 크게 받기 때문에, 배아 유전자 조작의 결과가 ‘디자인’을 완전히 반영한 것으로 나타나지 않을 확률도 높다. 그러나
배아를 유전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지닌 부모는 대부분 그렇지 않은 부모보다 아기의 성장을 위해서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줄 것이고, 이는 ‘디자인’된 아이가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렇게 배아의 유전자 ‘디자인’이 시작된 후 수세대가 지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요즈음 세대 간격이 조금 길어졌으므로 한세대를 50년으로 잡으면 수 세대는 300년 가까운 기간이 된다. 300년 후 유전자 ‘디자인’이 초래할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어쩌면 공상과학영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현재의 가능한 기술을 외삽해서(extrapolate) 어느 정도 합리적인 예측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리 실버라는 미국의 분자생물학자는 이러한 외삽법을 이용해서 꽤 설득력이 있는, 그렇지만 아주 섬뜩한 예측을 내놓았다. 그는 300년 후에는 서로 생식이 불가능한 다른 인간종이 나타나리라고 예측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유전자를 '디자인'한다고 하면 인간의 23쌍의 염색체를 뒤져서 원치않는 유전자는 개조하거나 제거하고 원하는 유전자를 그 속에 새로 주입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새로운 유전자가 염색체 속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염색체 속의 아무런 기능도 못하는 부분이 새로 들어온 유전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떨어져나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특정한 기능을 지배하는 부분이 그 과정에서 떨어져나가면 기형의 아기가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주입을 아무리 조심스럽게 한다고 해도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데, 이 문제를 피하는 길로서 리 실버가 예상하는 기술은 인공으로 염색체쌍을 만들고 그 속에다 원하는 기능의 유전자를 집어넣어서(유전자팩) 핵 속에 주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디자인’된 사람의 염색체쌍의 수는 23개 아니라 24개가 될 것이고, 이 사람은 23개의 염색체쌍을 지닌 보통 사람과는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이들간에 서로 생식을 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결국 수세대에 걸친 유전자 ‘디자인’의 누적은 지구상에 서로 다른 인간종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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