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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되돌아보게 되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에 관하여 그의 삶과 현대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하여 정리했습니다.

미여울 2021. 4. 15.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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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달리 의사를 돈을 많이 벌기위해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가는 곳이라는 의미가 되긴 했지만 


환자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고 건강을 지키려는 의사의 윤리적 역할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겠죠




1. 의료윤리 4원칙



 

 




<자율성 존중><악행금지><선행><정의>의 원칙 중

악행금지Do not harm의 원칙은 환자를 돕고자하는 직업소양으로

의료행동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_BC 460(?) ~ BC 377(?)>

 




히포크라테스는 서양의학의 역사에서 약 2,500여년간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고 아직까지도 <의학의 아버지>라 불려 지고 있습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의학계에서는 이론적, 실천적으로 위기가 

있을때 마다 “히포크라테스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토해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2.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고대 그리스 시대 ‘질병은 신이 내린 벌’이라 믿었습니다.





 

 




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460년경 지금의 터키 연안 코스 섬에서

의사인 헤라클레이테스Heracleides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고대 그리스는 가문의 직업이 자식에게 대물림 되던 시기로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의사였던 히포크라테스는

어릴 때부터 의학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히포크라테스가 살았던 동 시대 고대 그리스에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데모크리투스> 시인<핀다르>

극작가<에이스킬루스><소포클레스> 정치가<페리클레스> 역사가 <헤로도토스><투키디데스> 등


이름만 들어도 기라성 같은 수 많은 분야에서 당대 명성을 떨치던 위인들이 활약하던 시기로

고대 그리스 역사상 학문적 활동이 가장 왕성하게

꽃을 피우던 황금시기였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히포크라테스는 여러 곳을 여행하며

수 많은 학자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

의학에 대한 자신만의 소양을 정립 해나가게 되었습니다.







 

 




현대 의학의 3요소인 <지식Medical knowledge><기술Medical - technique> 그리고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성에 기

 

한 직업윤리인 <태도Professionalism>의 기틀도

이 시기부터 확립되게 되지요






 

 




히포크라테스는 키가 작고 머리가 벗겨진 대머리로

외모가 잘생긴 편은 아니였지만 부드러운 성격과 친근한 말투로

그를 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었다고 합니다.


히포크라테스는 환자를 대할 때 직접보고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냄새를 맡아보고, 만져보고 심지어 맛을 봐 진찰했다고 합니다.





 

 




특히 자신의 의학지식으로 진단과 수술용 기구를 직접 개발하였고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생긴 오진과 그로 인해 생긴 잘못된

임상경험까지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 의학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자료를 남겼다고 합니다.




 

 




히포크라테스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는

그가 활동하기 전과 후를 비교하였을 때 의료를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 텔레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만들어져 태어났다고 생각해서 의학을 철학과 동일시 하였습니다.



그래서 철학자 중에는 의사를 겸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고

피타고라스 아리스토 텔레스가 대표적 입니다.











3.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 신화 속 의술의 신인 아폴론의 아들 입니다.

어머니는 바람을 피우다 아폴론에게 죽임을 당한 코로니스로

죽을 당시 코로니스는 아스클레피오스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아폴론은 아스클레피오스를 구해 예언자 케이론에게 맞기게 되고

케이론에게서 자라면서 의술을 배우던 아스클레피오스.





 

 




아테나가 메두사를 죽이고 얻은 메두사의 피를 아테나에게 선물로

받으면서 죽은 자를 살려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제우스의 번개를 맞아 죽은 글라우코스를

치료하던 중 뱀 한마리가 나타나자 놀라 자신의 지팡이로

그 뱀을 때려 죽이게 됩니다.



그런데 잠시 후 또 다른 뱀이 나타나 이름 모를 약초를 죽은 뱀에게

올려두자 죽었던 뱀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고는

그 약초를 글라우코스 입에 갖다 대어 그를 살려내었다고 합니다.





 

 




그 후 자신의 지팡이를 감싸고 있는 한 마리의 뱀이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의료의 상징으로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아폴론의 쌍둥이 남매이자 아스클레피오스의 고모인

순결의 신 아르테미스의 부탁으로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던

히폴리토스(테세우스의 아들)를 살려준 아스클레피오스는


그 죄로 히폴리토스와 함께 제우스의 번개를 맞아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억울하게 죽자 제우스는 아폴론을 달래기 위해

아스클레피오스를 의술의 신으로 신격화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죽은 자도 살려내는 성스러운 신전으로 추앙 받게 되었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이전 의학은 아스클레피오스와 같은 신화에

바탕을 둔 신앙적 해석과 같아서 “질병이란 신이 내린 벌이므로

신에게 벌을 거두어 달라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법”
이라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믿어 왔습니다.


일종의 미신이었죠

 

 




그래서 신을 모신, 신과 가장 가까운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은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한 고대 그리스인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찾는 가장 중요한 병원 이였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상 속에서 히포크라테스가 전파한 의학의 핵심은

“질병은 신이 내린 벌이 아니라 곧 사람의 몸 내부와 외부에서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변화해 발생하는 것으로

이 환경을 바로잡으면 질병을 고칠 수 있다”
는 현실적 판단 이였습니다.



즉 히포크라테스는 피상적 사고에서 비롯된 관념에서 깨어나

이성적 판단과 임상적 관찰을 통해 성심으로 환자를 대하면서

질병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관념적 사고를 바꾸게 되었고

이런 사고의 전환은 과학적 의학발전에 토대가 될 수 있게됩니다.










4. 히포크라테스 전서_Corpus Hippocraticum





히포크라데스가 제자들에게 전달한 수많은 의학지식이 구전과 기록으로 후대에 전해지게 됩니다.





 

 




전서의 내용은 현대 의학과는 맞지 않는 부분도 상당수가 있고

경우에 따라 서로 모순되는 내용도 있는 것으로 보아

여러 의학자들이 각자 자신의 연구들을 각각 모아

히포크라테스의 이름으로 헌정되었을 것으로 추정 됩니다.






 

 




하포크라테스가 죽은 후 알렉산드리아에 도서관이 생겨났고

이후 알렉산드리아는 의학을 배우는 학문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병리학, 생리학, 해부학 등 기초의학이 발달하게 됩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학문연구를 하던 학자들이 약 100여년간

노력한 결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히포크라테스 전서>입니다.



<히포크라테스 전서>는 질병을 증상에 따라 분류했는데

급성질병과 만성질병으로 구분하고 풍토병과 유행병을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각 질병에 대한 치료방법과 함께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언제나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윤리적 기초가 담겨 있습니다.



헬레니즘기 이후 고대 의학자들이 자신의 무능과 무지를

은폐하기 위해 히포크라테스 전서를 만들어 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런 논쟁 속에서도 <히포크라테스 전서>는 시간과

공간의 벽을 넘어 현대에도 쉽게 과거 2,500년 전 히포크라테스의

의료에 대한 직업윤리와 태도를 
연결해주는 귀중한 인류 자원입니다.










5. 히포크라테스 선서





현재 전 세계 의과대학 졸업식에서는 의사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된 새내기 의사들이 선서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이 선서를 <히포크라테스 선서>라고 하는데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1804년 몽펠리에 의과대학 졸업식에서

처음 선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 되었다고 합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히포크라테스 자신이 직접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히포크라테스 전서>와 같이 후대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져 수정되어 전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낙태와 독약처방이 성행하고 환자를 사이에 두고 경쟁관계인

동료의사에 대한 음해가 난무하던 시기에 의사가 가져야 할

직업윤리와 태도에 관한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사용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여러 종류로 사용되던 것을

1948년 세계의사협회에서 현대적으로 수정하여 제정한 것으로

<제네바 선언>이라고도 합니다.





 

 




제네바 선언은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비윤리적 인체실험과

학살이 개정의 주된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약 2300여년전 히포크라테스가 윤리적, 합리적 의료행위를

강조한 점은 <제네바 선언>제정 당시에도 의학계가 배우고

따라야 할 인류애적 헌신 이였지요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 연세대 의과대학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처음 하며 시작되었고 현재 대부분 의대 졸업식에서 선서하고 있습니다.







5. - 1) 히포크라테스 선서_제네바 선언Declaration of GENEVA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품위를 가지고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환자가 나에게 알려준 모든 것에 대하여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의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나의 동업자를 형제자매처럼 생각하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게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이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나는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그 밖의 히포크라테스와 관련된 일화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원후 2세기경 작성된

그리스 의학사 Anonymus Londinensis에 따르면 히포크라테스는

당대 그리스에서 뛰어난 의술을 가진 최고의 의사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당시 그리스의 이름난 명의 20명 중 한 명으로 꼽혔을 뿐이며

다른 19명의 의사들과 별반 큰 차이 없이 다루어 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히포크라테스가 오늘날까지 전설로 남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가진 의술과 환자를 대하는 헌신,

그리고 남다른 애국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히포크라테스가 살던 고대 그리스는 도시 국가시대로

야만족 일릴리아 및 파이오니아 그리고 페르시아와 마케도니아의

강력한 정치권력들이 아테네, 스파르타와 경쟁하던 시기로

그만큼 의술이 뛰어난 실력 좋은 의사들의 수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던 시기였습니다.
 




 

 




아테네에서 대역병이 돌아 아테네 시민들이 모두 아테네를 버리고

삶의 터전을 떠날 때 히포크라테스는 스스로 아테네로 들어가

전염병의 원인을 찾으려 노력하였고 근본 원인을 찾게 되면서


아테네는 대 역병의 고통에서 벋어나 많은 시민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일로 히포크라테스의 명성은 주변 국가에 크게 알려지게 되었고

이민족들의 왕들로부터 무제한의 조건을 제시 받으며 초빙 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의 적들에게 자신의 의술을 베풀지 않겠다”라며

이민족 왕들의 달콤한 제한을 거절하였습니다. 


히포크라테스는 권력에 쉽게 굴하지 않고 의사로서 권위와 위엄

의연하게 지켜 조국과 국민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의사 본연의 역할

사람들을 질병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높은 직업윤리의식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은 후대에 귀감이 되었기에

오늘날까지 <의학의 아버지>로 존경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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