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과 인간의 미래

생명공학, 철학, 논술 등 방통대 생명공학과 인간의 미래 요점 정리 2. 생명공학의 발달과 정치제도의 변화

미여울 2023. 1. 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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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생명공학의 발달과 정치제도의 변화

2. 1 맞춤형 줄기세포 연구와 이에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

 

한국 생명공학 연구의 최정상으로 여겨지던 황우석 박사의 연구조작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황우석 박사를 두둔하는 사람, 황우석 박사를 호되게 비판하는 사람,중립적인 입장에 선 사람들 사이에서 난자매매, 연구원 난자 이용, 연구결과 조작에 대한 판정 여부, 연구재개 허용, 황우석 박사에 대한 징계 등d사안을 놓고 다양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인간의 체세포 복제배아로 부터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황우석 박사의 연구는 한국사회를 열광시켰기 때문에 그의 연구조작 소식은 사회를 극심한 혼란에 빠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황우석 박사 옹호자와 비판자 사이의 논쟁도 숨 가쁘게 전개되었다. 이 논쟁에는 과학자들도 참여했지만 인문학자, 사회과학자, 종교계에서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었다. 과학의 문제에 대해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사회 과학자들도 황우석 박사 연구를 둘러싸고 나타난 한국 사회의 열광과 혼돈을 진단하는 발언을 잇달아 쏟아 냈다.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황우석 사태를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후진성과 연결하여

노무현 정권의 업적주의와 동원전략에 황우석 박사 연구가 이용된 결과로 해석했으며, 이러한 정권의 전략에 국민들 대다수가 열광적으로 호응함으로써 황우석 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적 동원과 대중의 열광을 민주주의의 퇴행현상으로 해석했고, 파시즘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사 파시즘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황우석 사태에 대한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의 언급은 최장집 교수의 문제의식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현상이고, 한국 사회의 퇴행적인 면, 한국 사회의 후진성과 병리현상을 드러내는 것, 한국의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것이라는 진단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여성학자나 여성운동가들도 여성의 시각에서 난자의 채취나 매매가 여성 몸의 상품화 라는 비판을 내놓았다. 많은 언론학자들은 황우석 박사의 연구를 긍정적으로 보도한 한국 언론에 대해 너무 편향적이고, 과학맹신주의에 빠져 있고, 피상적인 취재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언론의 자세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파시즘을 낳을 수 있다는 비판을 던졌다.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고, 많은 토론회가 열렸고, 자성과 비판과 반성의 물결이 넘펴났다. 그리고 황우석 사태는 어느 정도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과학자 인문학자, 사회과학자, 종교계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 냈지만 근본적으로 그전과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언론이 더 중립적인 입장에서 심층취재를 해야 한다는 것은 언론계의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과학자가 자기가 연구해서 얻어 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해야지 연구를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상식적인 것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전 국민을 열광케 한 월드컵 현상에 대한 분석도 수행한다. 당연히 유사한 열광뿐만 아니라 절망까지 낳은 황우석 현상에 대해서 분석하고 진단하는 것도 사회과학자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사회과학의 일상적인 연구활동에서 크게 벗어나는 색다른 작업이 아니다. 종교계에서는 인간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항상 하던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여성계에서는 난자매매가 여성의 몸을 상품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는데, 이것도 색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의 몸은 종종 상품화된다. 이를 잘 보

여주는 것이 매춘이다. 미인대회도 몸을 상품화한 것이다. 여성계에서는 자주 미인대회와 매춘에 대해서 비판적인 발언을 해 왔다. 여성계에서도 황우석 사태를 겪으면서 지금까지 늘 하던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렇다면 황우석 사태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여러 큰 사건의 경계, 언론계 등에서 그러한 사건을 대할 때와 동일한 자세로 접근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일반적인 접근방식을 동원해서도 충분히 정리할 수있는 사건이었다는 말도 충분히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2.2 생명공학 연구가 우주나 물질연구와 다른 측면

 

황우석 사태는 우리 사회에 큰 교훈을 주었으며 과학계의 연구가 제대로 정립되고 한국의 언론이 중립적이고 심층적인 취재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서울대학교와 정부 생명윤리위원회에서 제대로 조사하고 전말을 상세하게 밝히고 정리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한국의 과학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약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이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가 교윤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만일 이 사건이 천문학계를 놀라게 한 우주 관련 연구를 조작함으로써 발생한 것이거나 또는 물리학계의 총아로 촉망받던 얀 헨드릭 쉰(Jan Hendrik Shön)1이 했던 것과 비슷한 입자물리학 연구의 조작이었다면, 연구윤리 강화를 통한 과학계의 자정이 절실하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것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도 될 것이다. 물론, 한국사회가 이들의 연구가 노벨상감이라고 해서 또는 값싼 에너지 생산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리라는 기대에서 대대적으로 열광했다면, 이에 대해 사회과학자들이 한국 사회의 후진성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비판을 쏟아 내는 것도 정리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황우석 박사의 연구를 우주나 물질입자에 대한 연구와 동급의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황우석 사태는 우주연구에 관한 조작이나 입자물리학의 연구조

작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황우석 사태는 그가 연구결과를 너무 부풀려서 조작했고 여기에 언론과 정치가 맞장구를 쳤기 때문에 커다란 사회문제로 불거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의 보도 형태와 연구윤리에만 초점을 맞추면 사태의 본질과 진정한 교훈은 놓치게 된다. 황우석 사태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생명공학 자체에 관한 것이다. 지금 생명공학, 유전공학이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정말 깊이 따져 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황우석 사태는 우리에게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1970~, 독일 출신 물리학자로 응집물질물리와 나노기술을 연구했다. 벨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호기기적 연구결과를 잇달아 발표하여 물리학의 총아로 촉망받았지만, 결국 논문조작 사실이 밝혀 지면서 커다란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출처: Wikipedia).

한국에서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는 그 연구가 세계 최초이고 중환자를 치료할 수 있고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의 연구가 많은 여성으로부터 난자를 뽑아내야만 가능한 것이고, 태아와 신생아고 성장할 수 있는 배아를 상당히 많이 파괴해야 하는 것이고, 복제인간의 등장을 앞당길 수 있고, 배아선별, 배아 유전자변형을 수월하게 해 주는 연구라는 것은 잘 몰랐다. 극소수의 사람이 이러한 사실에 대해 경고했지만, 언론에서도 과학계에서도 그리고 종교계나 윤리학자들도 대부분 이사실은 무시했다. 섬세하게 따져 보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황우석 사태를 통해 심한 혼란을 겪고 난 지금도 이러한 작업이 본격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한국의 많은 연구실에서 유전공학 연구와 줄기세포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며, 황우석 사태로 어느 정도 생명공학 깊숙한 곳에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텐데도, 이들 연구가 담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앞으로 연구윤리를 정확하게 지키면서 배아복제나 줄기세포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나타난다면 언론에서는 어느 정도 중립적인 입장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 하기도 하면서 그들의 연구결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도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연구윤

리를 잘 지키면서 이룩한 훌륭한 연구로 받아들일 것이다. 사회과학자나 인문학자도 아마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생명공학 연구는 별다른 문제제기에 부딪히지 않고 전진해 갈 것이다.

 

2.3 맞춤형 줄기세포 연구 성공 후 난자수급과정에서 발생할 문제

 

사회과학자나 인문학자가 특별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면 생명공학 연구자들은 생명공학 연구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것이다. 그렇기 떄문에 연구는 계속 진행되고 확대되어야 한다.”는 선전문구를 내걸고 연구비를 따내며 연구 영역을 계속 확대해 갈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명공학의 확대를 인문사회과학은 그냥 지켜보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인문사회과학자들은 아마 국민적인 열광만 없으면, 언론의 과잉보도와 편향보도만 없으면, 그리고 연구윤리를 저촉하지만 않으면 특별히 언급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생명 과학은 사회과학 분석대상이다. 과학 자체가 사회과학의 분석대상이 되었기 떄문에 생명과학도 그 대상이라는 말은 상식에 속하는 진부한 것이다. 그렇지만 생명과학에는 다른 과학보다 훨씬 특별한 것이 있다. 핵무기 연구가 수많은 인명을 죽음으로 몰아갈 것이기 때문에 다른 과학연구보다 특별한 관심을 받야 하듯이 생명공학도 그렇다. 오히려 핵무기 연구보다 더 특별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맞춤형 줄기세포가 오랜 연구 끝에 임상에 적용될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황우석 박사는 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해 2,000개 이상의 난자를 사용했다. 그러고도 실패했다. 난자들은 대부분 기증받은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매입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개의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해서는 2,000개보다 더 많은 난자가 필요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제 황우석 박사가 수행한 연구를 수십 번 이상은 해야 맞춤형 줄기세포주를 확립하는 기초연구가 완성된다고 가정하자. 줄기세포를 한 개 만들었다고 해서 연구가 완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확실하게 재연 가능한 줄기세포 생산기술을 확립해야만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연구는 한 차례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러 번 반복될 수밖에 없다. 동물복제도 전 세계에서 수천 번 시도되고 수백 번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물복제 기술이 완벽하다고 말하는 연구자는 없다. 아직도 사산이나 기형동물 출산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복제인간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에 대해 복제동물 연구잗르이 우려를 표하는 것에는 윤릭적인 이유도 있지만 이러한 이유도 있다. 황우석 박사가 수행한 연구가 수십 차례 반복되어야만 맞춤형 줄기세포 기초

기술이 확립되고 그 후에도 기초연구가 계속 진행된다면, 이 과정에서 약 10만 개 이상의 난자가 사용되어야 한다. 그 후 이 기술이 임상에 사용될 경우 난치병 환자 한사람에게 투입될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약 500개의 난자가 들어간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100명의 난치명 환자를 치료하는 데 필요한 난자의 수는 기초연구용 10만 개와 치료용 5만 개를 합해서 15만 개가 된다. 1,000명의 환자를 치료할 경우에는 60만 개의 난자가 필요하다. 이 난자들은 모두 소위 싱싱한 난자여야 하며, 따라서 20대부터 30대 초반의 여성들로부터 나온 것이어야 한다. 물론, 이들보다 나이가 더많은 여성들로부터도 난자를 얻을 수 있고, 이들 중에도 부적격 난자를 지닌 여성들이 있겠지만 일단 연령대를 이렇게 한정하자. 현재 한국의 20~34세까지 여성의 쉬는 약 550만명이다. 이들 중에서 60만 개의 난자를 얻으려면 1퍼센트가 넘는 6만 명의 여성이 각각 10개씩 난자를 제공해야 한다. 한국의 척수장애인 수는 약 20만 명이다. 이들 중에서 10퍼센트인 2만 명을 치료하려면 필요한 난자의 수가 1,000만 개, 절반을 맞춤형 줄기세포로 치료하겠다고 하면 필요한 난자의 수는 5,000만 개로 늘어난다. 난자를 제공해야 하는 여성의 수도 100만 명, 500만 명으로 증가한다. ‘싱싱한 난자’ 60만 개를 제공할 6만 명의 여성, 1,000만 개를 제공할 100만 명의 여성, 그리고 500만 명의 여성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한국에서는 난자기증운동을 아무리 열심히 벌인 다고 해도 500만 명, 100만 명은 고사하고 6만 명의 신청자도 찾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황우석 박사가 난자를 기증할 여성을 찾지 못해서 돈을 주고 난자매입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어떤 여성 들은 난자기증재단을 설립하여 난자기증운동을 벌였다.

며칠 만에 수백 명이 난자를 기증하겠다고 신청했다. 이들은 황우석 박사가 연구를 재개해야 한다는 시위에도 참가했다. 그들은 한국의 수많은 난치병 환자를 위해 줄기세포 연구를 재개하는 것이 마땅하며, 이 연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스스로 난자를 기증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짧은시간안에 수백 명의 난자기증 자원여성이 모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증자가 수백, 수천 명씩 나오게 되면 줄기세포연구에서 난자확보라는 과제는 우려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수가 수만 명, 수십만 명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난치병 환자는 척수장애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여성들이 거론한 알츠하이머병, 파킨스병 등 다른 난치병 환자까지 합하면 그 수가 아주 많다. 충분한 수의 난자기증자를 찾을 수 없다면 난자확보는 시장을 통할 수밖에 없다. 난자거래가 이루어지고, 거기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난자매매시장이 생겨나는 것

이다. 한국의 생명윤리법에서는 난자매매를 금지하고 있다. 황우석 박사팀의 난자매매는 생명 윤리법이 발효되기 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생명윤리법이 존재하는한 난자매매는 이루어지지 않고 당연히 시장 같은 것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기증받은 난자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가 궤도에 오르고 성공하여 임상적용 단계까지 갔는데 난자가 부족하여 더 이상 연구나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난자매매를 허용하라는 거센 압력이 닥칠 가능성이 많다. 실제로 황우석 박사팀이 난자매매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도 한국의 많은 시민, 학자들은 이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이들은 교통비를 조금 많이 주는 정도로 받아들이거나 서양의 기준으로 보지 말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만일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가 유전자 치료 정도의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단계에 왔는데 난자가 모자란다면 여성 개개인에 대한 난자기증 압력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주위에 난치병 환자가 있는 젊은 여성의 경우 친척들로부터 은근한 난자기증 기대의 압력이 들어오거나 난자를 기증한 다른 여성과 비교되는 일도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난자기증에 대한 기대와 압력이 높아진다 해도 연구나 치료에 필요한 수많은 난자의

공급이 충족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난자매매 허용에 대한 압력이 폭발지경에 이를 것이고, 정부에서는 매매가격에 대한 기준 정도를 만들어 난자매매를 허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난자매매가 시작되면 누가 난자를 판매할 것인가? 난자채취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소수의 숭고한난자기증자는 부자든 가난한 자든 자신의 계층에 상관없이 남을 돕는다는 마음을 가지고 기증할 것이다. 이들은 설령 부작용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것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로 난자채취에 임할 것이다. 그러나 부작용을 생각한다면 난자를 팔아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은 결코 자기 난자를 팔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난자를 팔아서라도 돈을 벌고 싶은 여성들만 난자매매에 응할 터인데, 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계층의 여성들일 수 밖에 없다. 가난한 여성들은 자신의 몸의 일부를 판매하고 연구자, 의료산업자, 돈 있는 난치병환자등과 같은 돈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하는 구조가 생겨날 수 있으며, 이는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 가격기준을 만들더라도 공급이 딸리면 난자매매시장이 음양으로 형성되고 난자매매를 통해 생계를 꾸려가 가려는 여성도 나올 수 있다. 여성들을 모집하여 난자매매를 조직적으로 수행하고 이들에 대한 착취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집단도 생길 수 있다. 돈이 필요하여 자신의 아내나 딸에게 난자판매를 강요하는 남성도 나올 것이다. 이처럼 매우 다양하고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할 것이므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인문사회과학의 충분한 분석대상, 연구대상이 되어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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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생명공학 연구는 인간 자신의 변화를 가져온다

 

한국에서 줄기세포 연구는 황우석 사태를 낳았다. 황우석 사태가 준 충격이 대단히 컸기 때문에 현재 난자기증운동이나 줄기세포 연구는 주춤해 있는 상태이다.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가져올 사회문제에 대한 우려로 인해 연구가 지체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계·언론계·정치권에서 황우석 사태로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다시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간이 흐르고, 어떤 연구자가 줄기세포 연구로 획기적인 결과를 얻었다는 보도가 나오면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다시 주목과 지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줄기세포 연구가 가져올 사회적 결과에 대한 깊은 고민을 거

치지 않은 채 줄기세포 연구가 가져올 사회적 결과에 대한 깊은 고민을 거치지 않은채 줄기세포 연구의 확대를 지원하는 것은 매우 경솔한 일이다.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복제인간의 탄생을 수월하게 만든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맞춤형 줄기세포 연구는 체세포복제배아를 만들고 검사하고 진단하고 성장시키고 조작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당연히 연구를 할수록 복제배아 제조, 검사, 성장, 조작 관련 기술이 발달한다. 복제인간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논쟁이 진행중이다. 찬성으로 기우는 사람들은 단지 현재 기술이 완숙 상태가 아니고 따라서 기형아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기상조라고 할 뿐, 언젠가 완벽한 기술이 제공되어 건강한 복제아기가 탄생할 수 있으면 인강복제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복제아기를 가질 선택권은 부모에게 주어져야지 국가에서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다른 방법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기를 얻지 못하는 부모, 끔찍이 사랑하던 아이를 사고나 병으로 잃은 부모가 복제를 통해서라도 아이를 갖기 원한다면 허용하는 것도 인도주의적이고 더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복제가 개개인의 행복을 증진할 수 있다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인간을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하여 부작용이 제거되면, 이들의 복제아기 허용 요구도 거세어질 것이고 불법으로 복제아기를 가지려는 시도도 나타날 것이다.

복제기술이 완성되면 복제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또한 규제의 효과 없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한 국가에서 규제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국가에서 혀용하면 사람들이 그 나라로 가서 복제아기를 만들 것이기 때 문에, 규제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는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하여 한 국가에서 그런다고 해도 다른 국가에서 먼저 해 버리면 결국 쫓아가는 처지가 될 것이므로 미리 허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다. 2005년 말 황우석 사태로 큰 혼란이 일고 있을 때에도 어느 신문에서는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성공한 줄기세포 연구결과를 일본에서 먼저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서는 보도와 함께 바로 황우석 박사의

연구를 둘렀나 논란이 연구의 발목을 잡아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는 코멘트를 덧붙였다

(조선일보 2005.12.6). 복제 찬성자들은 각 국가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의 금지조치는 결국 다른 나라에 선두를 내주게 된다는 논의를, 배아복제를 넘어 인간복제에까지 적용하려 들 것이다. 어쨌든 줄기세포 연구가 크게 진전되고 이를 통해 배아를 다루는 기술도 완성단계에 들어서면 복제를 허용하라는 요구는 거세어질 것이고 많은 논쟁이 일어날 것이다. 배아줄기세포의 연구와 인간복제는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생식세포나 수정란의 유전자조작으로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수정란에 대한 제한적인 간섭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수정란 상태에서 성을 선택하여 원하는 성의 수정란을 골라내는 일이 이루어지고 있고, 수정란 상태에서 유전자를 검사하여 비정상 유전자를 지닌 수정란을 제거하는 일도 수행되고 있다. 이러한 유전자를 선택하고 제거하는 적업의 다음 단계는 유전자를 보완하고 조작하는 일이 될 것이다. 유전자의 보완은 능

력 있는 아기를 얻으려는 부모의 기대에 부합하는 것이다. 키가 크고 건강하고 지능이 뛰어나고 예술적 재능을 지닌 아이, 부모라면 대부분 이러한 아이를 갖고 싶어할 것이다. 지금은 기술 수준이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지만, 수정란 상태에서 유전자를 보완해 주는 기술이 완성된다면 많은 부모들은 이 기술을 적용하려 할 것이다. 한국의 많은 부모가 자기자신을 과도하게 희생 해서라도 자식이 잘되기를 원하는데, 그것이 수정란의 유전자 보완으로 가능해지고 신체적인 부작용이 없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에 대해 많은 과학자나 철학자들이 긍정적이다. 인간의 본래적인 능력을 높여 잘살 수 있게 만드는 것으로, 그것이 다른 사람의 희생 위에서 일어나

는 일도 아닌데 굳이 막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유전자를 조작해서 수명을 크게 늘릴 수 있고, 늙었을 때 발생하기 쉬운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스병, 당뇨, 각종 유전자와 관련있는 암 등의 발병을 예방할 수 있다면, 그리고 지능이나 신체의 능력을 높일 수만 있다면 수정란 상태에서의 유전자 조작 또는 보완은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수정란 상태에서의 유전자 조작이나 보완을 통해 인간 삶의 질이 크게 높아질 수 있는데, 이것을 막는다는 것은 인류의 발전 자체를 방해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정란 상태에서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은,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기에게는 부작용이 없을지 모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큰 부작용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수정란 유전자조작은 인간을 바꾸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과학자 들의 많은 경고가 있었다. 인간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신체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현재의 인간이 되었고, 현재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본성에 기초하여 현대 정치·경제·사회·문화 체제를 포괄하는 문명 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인간의 공통적 본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대문명을 지탱하는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영화 <가타카>에 나오는 것과 같은 사회를 상정해 보자. 그 사회는 유전자 조작을 받고 태어난 사람(gene-rich)과 그렇지 않은 사람(gene-arm)이 공존한다. 이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까? 지능과 신체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과 지능과 신체적 능력이 높은 사람들에게 각각 한 표씩 투표권을 준다고해 보자. 만일 유전자조작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 불이익을 당한다고 느끼고 실제로 하층계급을 형성하고 있다면, 이들의 불만은 투표를 통해 나타날 것이다. 이들은 당연히 자기 계층을 대변하는 사람을 뽑을 것이고, 결국 정치 구도에서도 정책이나 계급이 아니라 유전자조작을 기준으로 대립이 형성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민주주의 선직국에서 시행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란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이들 중에서 어떤 의견을 채택할 것인가에 대해 설득과 논쟁을 통해,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체제이다. 그러나 유전자조작이 구분선이 되는 사회에서 이 구분선의 좌우대립 속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의견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apartheid)2 정권에서 흑인이나 백인이냐가 가장 결정적인 사회적 구분선이었듯이 이 사회에서도 유전자조작 여부가 구분선이 될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에서도 백인사회 내부에서 민주주의는 그런대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러 정당이 존재했고, 극소수지만 흑인에게 동조하는 정치집단도 존재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백인들은 흑인을 배제했고, 흑인들은 백인을 배제했다.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투표권을 주면 흑인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흑인정권이 들어설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백인들이 흑인 들에 의해서 핍박받을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백인들은 흑인들을 억압하고 배제했으며, 흑인들은 백인들을 증오하고 조직적인 저항운동을 벌이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생명공학은 인간의 미래를 바꾼다.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고, 제도까지 크게 바꿀 수 있다. 이러한 생명공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면밀히 검토하는 일이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결론이 난다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주류 백인들의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로 분리라는 뜻.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수 백인이 다수 유색인종을 지배하기 위해 시행했던 인종차별적 정책으로, 유색인종에게 불리한 인종분리와 정치 및 경제에서의 차별대우를 인정했다. 1960년대부터 흔히분리발전정책이라고 부르게 된 아파르트헤이트는 국민을 반투(순수한 아프리카 흑인)과 유색인(혼혈인종) 및 백인으로 구분하는 1950년의 주민등록법으로 시행이 가능해졌다. 넷째 부류인 아시아인(인도인과 파키스탄인)은 나중에 추가되었다(출처: 브리태니커 사전). 3강 생명공학, 줄기세포, 사회변화

이장에서는 생명공학의 출발과정을 생명에 대한 하나의 관점이 수립되어 가는 과정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물리적 관점이다. 과학사가인 토머스쿤(Thomas Kuhn)의 말을 빌리자면, 생명에 대한 하나의 패러다임, 즉 물리적 관점에서 생명을 바라보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형성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흔히들 생명공학 (bio-technology)의 사회적·윤리적 문제는 미래의 문제라고 한다. 아마도 그 말은 아직 우리가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거나 지금까지 그다지 심각한 문제가 벌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인간 개체복제와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 등 생명공학의 뜨거운 주제들은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대중논쟁을 거치면서 중요한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했고, DNA 이중나선은 제품광고에서 아이들의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21세기를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물, 즉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더구나 인터넷에는 유전자 검사로 자녀들의 체력, 비만, 지능을 알려 주겠다는 바이오 벤처업체들의 광고문이 앞 다투어 오르고 잇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전자는 이미 우리 사회의 여러 차원에서 인간의 설계도이자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본질인 양 인식되면서 숱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래서 도로시 닐킨(Dorothy Nelkin)과 같은 과학사회학자는 오늘날 유전자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유전자, DNA, 그리고 생명공학이 이토록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을까? 어떻게 해서 과거의 원자나 인공위성 등이 가지던 지위를 유전자가 대신하게 되었을까? 거기에는 분명 역사적·사회적·문화적·이념적 과정이 개입해 있을 것이다. 깊게는 16~17세기 근대과학이 등장한 이후 서양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나아가 인간과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관점이 바뀌는 과정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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